2008. 5. 15. 13:09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

노무현은 국회의원들이 탄핵 요청했고
이명박은 국민들이 탄핵 요청한다.

노무현은 국민들의 비판은 당연한 것이다 라고 말했고
이명박은 비판하는 국민을 잡아들이라 말한다.

노무현은 국민90%를 선택했고
이명박은 국민10%를 선택했다.

노무현 내각은 국민을 사랑했지만
이명박 내각은 땅을 사랑했다.

노무현은 먼저 대한민국 국민과의 대화를 했고
이명박은 먼저 일본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노무현은 e지원을 만들었고
이명박은 컴퓨터 로그인도 못했다.

노무현은 안창호 선생님이라 불렀고
이명박은 안창호 씨라 불렀다.

노무현은 한일관계를 위해 과거역사를 철저하게 정리하자고 했고
이명박은 한일관계를 위해 과거역사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무현의 정책은 야당에서 발목을 잡았지만
이명박의 정책은 국민들이 발목을 잡았다.

노무현은 국민에게 자신을 봉헌했고
이명박은 하나님에게 서울시를 봉헌했다.

노무현은 임기 말에 욕을 먹었지만
이명박은 인수위 때 부터 욕을 먹었다.

노무현은 미국이라서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명박은 미국이니까 믿으라고 했다.

노무현은 꿈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고
이명박은 꿈에 볼까 두렵다.

노무현을 꿈에 보면 로또를 사지만
이명박을 꿈에 보면 다음 날 차 조심 한다.

노무현은 국민의 생명권을 기준으로 광우병 소를 막았지만
이명박은 미 축산업자의 돈벌이를 위해 우리 생명권을 포기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려 했고
이명박은 미국 경제를 살리려 한다.

노무현은 경제의 기초를 다졌고
이명박은 경제의 기초를 다 줬다.

노무현은 국민과의 공약을 지키는 것이 자랑스럽고
이명박은 국민과의 공약을 지킬까 봐 겁난다.

노무현에게선 거짓 찾기가 어렵고
이명박에게선 진실 찾기가 어렵다.

노무현은 부시를 운전했고
이명박은 부시의 카트를 운전했다.

노무현이 주권 확보를 얘기할 때
이명박은 주식 확보를 얘기했다.

노무현이 부동산 대책을 논할 때
이명박은 부동산 가등기를 고민했다.

노무현은 조중동이 괴롭혀도 지지율 30% 이상이고
이명박은 조중동이 빨아줘도 지지율 30% 이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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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속 시원하게 만들었네요. ㅎㅎ
Posted by 돌마루™
2008. 5. 12. 00:19
이선영 주부 AM1080 출연 1/5- 100분토론 출연배경


이선영 주부 AM1080 출연 2/5- 청취자의견(총영사-한인회장 문제지적)


이선영 주부 AM1080 출연 3/5- 청취자의견 (애틀랜타판 최선생님)


이선영 주부 AM1080 출연 4/5- 청취자 의견 (또다른 주부님)


이선영 주부 AM1080 출연 5/5 - 마무리멘트 '소고기 많이 드시지 마시고..'


정부관계자 분들 정말 나라를 망칠 생각이신지.... 정말 걱정됩니다.
Posted by 돌마루™
2008. 5. 8. 12:59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잘만들었네요.. ^^;;
Posted by 돌마루™
2008. 4. 30. 21:30

원문출처 : http://miznet.daum.net/contents/life/money/buza/view.do?cateId=9819882&docId=17385&pageNo=1

20대 대학생, 5년 만에 10억 모으기

'과외 아르바이트 하며 개미 투자 시작, 주식 투자 성공으로 음식점 창업'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야바톤 돈가스 대표 신태용씨(28)는 아직 대학생(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휴학 중)이다. 음식점의 창업비 2억2000만원을 비롯해 10억원의 목돈을 주식 투자를 통해 모으게 됐다.
젊다고 해서 주식 경력이 결코 짧지는 않다. 그가 주식에 발을 들인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1994년 아버지가 경제에 관심을 가져보라며 입학 선물로 1만원짜리 주식 30주를 주었다. 회사에 상관없이 1만원짜리만 골라 준 것. 이후에도 세뱃돈, 용돈 등 여윳돈이 생기면 주식으로 바꿔다 주었다. 이렇게 모인 주식은 고3 때 IT 업종의 호황으로 절정을 이루어 200만원까지 됐다. 그러나 그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던 2000년 3월, IT 버블이 꺼지면서 그의 주식 자산은 5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주식 투자의 첫 실패였다.
“원래 계산에 밝은 편이어서 대학에 오고 나니 가계가 더 잘 보이더라고요. 동생이 둘인데 대학도 보내야 할 것 같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오기로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주식 투자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500만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1년에는 9·11 사태로 보유 주식은 100만원이 됐다. 두 번째 실패였다. 하지만 이제는 ‘될 때까지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고 ‘왜 실패했을까’에 대한 나름의 분석도 하게 되었다. 우선 2002년 학교를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달 163만원씩 적금을 부었고 2000만원을 모았다. 그 무렵 『한국형 가치투자전략』을 읽고 기업 가치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님께 3000만원을 받고, 제가 모은 돈을 합쳐 5000만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어요. 2000년, 2001년에는 단기적으로 예측해서 주식 투자를 하는 게 대세였어요. 저 역시 기술적 분석 차트만 보고 투자를 한 거죠. 책도 별로 없었고, 잘 몰랐으니까요.”

철저한 기업 분석으로 집중 투자
그는 포트폴리오를 짜서 분산 투자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확실한 한두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편이다.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가 종목을 선택하는 방법은 네 가지다. 먼저 객관적인 분석이다. 재무제표, 사업 보고서 등을 찾아보고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금융정보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을 이용해 기업의 히스토리, 재무 상태, 수익성, 자산 가치 등을 면밀히 따져본다. 또 애널리스트의 분석, 기업의 홈페이지, 전자 신문 같은 업계 관련 사이트 등을 살펴본다.
두 번째는 실제로 그 회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옥수수 수염차가 부기 완화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광동제약을 유심히 살폈다. 현대자동차의 신차 ‘제너시스’가 1만 대 정도 계약을 따내자 현대자동차도 투자 대상이 되었다. ‘제너시스’는 5000만원이 넘어가기 때문에 수익성이 좋아지고 실적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출입 회사라면 그 교역국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회사의 인지도 등을 문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 번째는 대외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 등을 반드시 챙겨야 하는 종목이 있다. 구리, 알루미늄을 원재료로 쓰는 회사는 원자재의 비중이 높아서 수익 변동이 생긴다.
“부동산 투자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하잖아요. 누구든지 투자를 하기 전에 그곳에 가보는 것은 물론 주위 환경까지 살펴보죠. 반면 주식 투자는 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는 주식 투자를 하는 동안 2주에 한 번씩 기업 담당자에게 전화해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발로 뛰어 회사를 찾아갔다. 투자자 입장에서 회사가 잘 굴러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지켜볼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정을 보고 미래에 얼마만큼 수익이 날지 수익 추정을 해야 합니다. 주식 투자를 해놓고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정말 위험한 거예요.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지속적으로 확인을 하지 않을 때 리스크가 발생해요.”
기업 탐방을 가서 기업 정보에 관한 설명을 듣고 리스크가 될 만한 요인을 집중적으로 물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정보를 추려내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내부인은 기본적으로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맹목적으로 믿게 되기 때문이었다. 객관적 사실은 받아들이고, 주관적이고 낙관적인 정보는 잘 가려 들어야 했다.
“각 기업 담당자들은 홍보 차원에서 ‘좋다’라고만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정보를 받고 찬찬히 살펴보면 의문점이 생기거든요. 그걸 꼬치꼬치 캐물으면 서먹서먹해지면서 분위기가 냉랭해질 때도 많았어요.”

개미 투자로 주식 경험, 투자 금액 단계별로 높였다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 또한 지금까지 강조한 대로 ‘항상 확인하는 것’이었다. 생각하는 방향과 기업이 다르게 갈 때 투자 비중을 줄였다. 만약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투자를 접었다. 반면 회사는 생각하는 방향대로 잘 가고 있는데 시장 상황이 안 좋아 주가가 떨어질 때는 오히려 추가 매입을 했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기업에 실질적인 경영 악화를 가져온다면 투자를 줄이지만, 그 시장 상황에 묻혀서 동반 하락하는 것이라면 추가 매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회사의 미래를 보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주식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처음 시작하는 개미 투자자들에게 직접 투자보다는 간접 투자를 권한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직접 투자하는 것은 전쟁터에 총, 칼 없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직접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애널리스트와 펀드 매니저, 두 가지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 해요. 분석하는 것은 애널리스트 영역이고, 투자하는 것은 펀드 매니저의 영역이에요. 분석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경험을 해봐야 하죠.”
직접 투자를 한다면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 경험을 쌓을 것을 당부한다. 경험이 없으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으니 차근차근 투자 금액을 늘려 나가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다.
주식으로 100% 재테크를 했던 그는 앞으로는 연금에도 가입할 생각이다. 작년 가을에 결혼을 해 부인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철저하게 따져 보고서야 투자하는 그는 앞으로의 계획도 신중하다.
“2009년 가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요. 5~10년 동안은 일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엔 투자 회사를 설립하는 게 꿈이에요.”


Real Advice

1 간절함을 가져라 주식 투자나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은 금물이다. 쉽게 투자한 돈은 쉽게 빠져나간다.
2 준비하고 천천히 경험하라 애널리스트로서 기업에 대해 분석하고, 펀드 매니저로서 운용의 묘를 키워라. 최소 2~3년 준비 기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계좌를 관리하라. 공부하면서 투자의 감을 키우는 것이다.
3 복리 수익을 올려라 PBR(주가순자산비율) 1 미만이면서 흑자를 내고 있는 업체는 리스크가 적다. 이런 업체부터 시작해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업체로 조심스러운 투자를 하라. 직접 투자는 반드시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라.


Posted by 돌마루™
2008. 4. 29. 14:29

iframe 으로 했더니 도서관측에 너무 부하가 걸리는것 같아서 링크주소로 바꿉니다.
양해바랍니다. ^^

분당도서관          http://211.253.111.238:8080/EZ5500/SEAT/RoomStatus_s3.aspx
구미도서관 1열람실 http://211.253.111.235/snlib/index.asp?nowpage=1"
구미도서관 2열람실 http://211.253.111.235/snlib/index.asp?nowpage=2"


Posted by 돌마루™
2008. 4. 27. 17:20
출처 :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2007/06/22/200706220500012/200706220500012_1.html

가계부 관련 글을 찾다가 퍼왔습니다. ㅎㅎ 
좀  오래된 내용이지만, 좋은 내용인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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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사는 법]

‘30억 부자’ 조영구 재테크 성공 노하우 & 가수 데뷔 사연


글·김수정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조세일‘프리랜서’

MC, 리포터, 아카데미 강사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조영구. 그가 최근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얼마 전 방송생활 14년 만에 30억원을 모았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은 그의 재테크 비결과 가수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이유에 대해 들었다.

“형님! 그러잖아도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건강은 좀 어떠세요?” 올해로 방송경력 14년째를 맞는 베테랑 연예전문 리포터 조영구(41). 그가 매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ETN ‘연예스테이션’을 마치자마자 울려대기 시작한 휴대전화 벨소리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전화 받으랴, 기자와 인터뷰하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돌아가는 출연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 조영구. 방송국에서 ‘형님’ ‘누님’ ‘아우’로 통하는 지인들을 마주칠 때면 껑충껑충 뛰어가 껴안기도 수차례.

얼마 전 KBS ‘경제비타민’을 통해 ‘30억 부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던 조영구. 하지만 그는 그 후 살림 노하우와 재테크 비결을 묻는 전화가 쏟아져 매우 난감했다고 한다.

“저는 재테크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난데없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모을 수 있냐, 어떤 곳에 투자하면 좋은지 비결을 알려달라고 물어보니 정신이 없었죠.”

처음 ‘30억 부자’라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것도 그의 의지와는 무관했다고 한다. 평소 친분이 있던 가수 이광필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영구는 30억을 모은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 게 일파만파 퍼진 것. 특별한 비결을 가진 게 아니라면서 연거푸 손사래를 치던 그가 고심 끝에 털어놓은 답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벌고 덜 쓰기 위해 노력하며 열심히 산 것이 돈 모은 비결

조영구의 고향은 충북 충주.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1백만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의 성대모사와 모창을 수없이 연습했고 목에서 피가 나는 고통도 참았다고. 덕분에 편안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를 얻었다는 그는 “그런 시기를 거치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이 길에 들어섰으니 값진 경험을 한 것”이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94년부터 시작된 그의 14년 방송 인생은 대학 선배인 김병찬 전 KBS 아나운서의 도움으로 시작됐다. 프로그램 진행방법을 가르치고 생활비까지 지원해준 김병찬씨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그를 당시 KBS 인기 프로그램인 ‘홈런 일요일’의 아이디어맨으로 적극 추천했다고. 행사 도우미, 바람잡이로 일하며 불규칙한 수입을 얻었던 그에게 드디어 8만원이라는 고정수입이 생긴 것이다.

“날아갈 것 같았죠. 하루 종일 방송국 앞을 서성거리면서 꿈을 키웠거든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매주 아이디어를 냈더니 곧 구성작가로 투입시키더군요. 수입은 14만원으로 뛰어올랐고 한달에 56만원을 벌게 됐어요. 또 틈틈이 무대소품 정리를 하면서 8만원씩 더 받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으면서 다양한 일을 도맡았죠. ‘이왕이면 조영구한테 일을 주자’라는 게 PD들 생각이었다는데, 제가 그만큼 열심히 뛰었고, 그것을 알아줬으니 고마운 일이죠.”

이때부터 조영구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했다고 한다. 끼니는 무조건 2천5백원짜리로 해결하고 잠도 3~4시간 자는 게 전부였다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기면서 돈을 쓸 시간도, 돈을 써야 할 곳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고 한다. 출연료를 억척같이 저축한 그는 95년 2월 목동에 방 한 칸을 월세로 얻을 수 있었다고. 상경하면서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세웠다는 그는 “은행에 꼬박꼬박 출석한 대가”라며 웃는다.

“남들이 들으면 돈에 환장한 줄 알겠지만, 재테크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웃음) 무조건 아끼자는 각오로 가전제품이나 가구는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타거나 얻고, 옷은 협찬받았죠. 보일러나 에어컨은 켤 생각도 안 했어요. 돈 쓰지 않으려고 원천봉쇄를 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생활한 지 2년 후. 조영구는 봉천동에 3천5백만 원짜리 옥탑방을 얻고 다시 3년 뒤인 2000년, 마포에 1억5천만 원에 상당하는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를 얻으면서도 그가 결심한 것은 단 하나, 자신의 명의로 된 집 마련이었다고. “주택부금으로 1천만원을 넣었다”는 그는 “주식이나 부동산에 한눈팔지 않으면서도 빨리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꼼꼼한 가계부 정리와 헝그리 정신 덕분”이라고 말한다.

94년부터 수차례 도전한 끝에 조영구는 2000년 구로동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다시 1년 후 용산 부근에 있는 주상복합상가까지 당첨됐다. 1년에 넣어야 할 중도금만 네 번이었지만 대출을 단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다고. 그동안 더욱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 그의 비결 아닌 비결이다.

“지금도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벌고 덜 쓰기 위해 노력하죠. 자투리 시간만 잘 활용해도 큰 수익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침에 신문배달, 오후에는 각종 부업을 하는 직장인도 많아졌다고 들었어요. 종잣돈도 쌓이면 목돈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힘들었던 시절 도와준 이 돕기 위해 트로트 가수 데뷔

94년 SBS 전문 MC 1기 공채시험에 합격한 조영구는 ‘성실맨’으로 통한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고정 프로그램은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을 포함해 모두 7개. 데일리 방송만 두 개인데 그중 하나는 생방송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리포터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강사로도 나서 방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고.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조영구’를 찾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조영구의 스케줄 표는 건강 상태가 염려될 만큼 늘 빼곡히 차 있다.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한다니까요(웃음). 그래도 없는 시간 쪼개서 최근에는 음반까지 냈어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은 모두 ‘방송’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방송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음반시장이 침체됐다지만 과감하게 앨범 제작에 나선 것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쓰리쓰리’는 조영구가 이하경(43)·신디(24)와 의기투합해 만든 트로트 혼성 트리오다. 과거 조영구가 어려웠던 시절 많은 도움을 준 이하경은 일본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언더가수. 하지만 사업 실패로 이하경이 어려움을 겪자 조영구는 “이번에는 내가 도울 차례”라면서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됐다고. 또한 이하경의 오랜 꿈이던 가수 데뷔를 돕기 위해 앨범 제작에 투자했고, 작곡가 임강현씨의 추천으로 홍일점 신디를 영입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투자만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노래까지 하게 됐네요. 물론 제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는 게 장점도 되죠. 실은… 저도 무대에 서보고 싶었어요. 예전에 가수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소감이요?(웃음) 여기저기서 소리 지르고 박수치는 데 완전히 반했어요.”

이번 음반에는 타이틀 곡 ‘그래요’와 ‘마음이 고와야지’ ‘빗속의 여인’ 등 세 곡이 담겨 있다.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내심 꿈을 이뤘다는 기쁨에 들떠 있다고. 조영구는 “앨범 제작자와 가수라는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는 중”이라면서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카메라가 ‘쓰리쓰리’를 비출 때면 뒤로 물러나 나머지 멤버를 더 내세운다는 그는 그동안 친분을 쌓아온 DJ, 작가, PD들에게 ‘쓰리쓰리’를 알리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베테랑 방송인’이라는 위치를 떠나 신인가수로서의 기본은 철저히 지킨다고. 그래서 ‘쓰리쓰리’는 스타일리스트도,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없다. 스스로 발품을 팔아 마련한 옷 한 벌을 입고 분장실에서 서로의 메이크업을 도와주는 게 전부다.

“그래도 볼 때마다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꼬박꼬박 챙겨주세요. 방송에 대한 것을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는 모습에서 다정다감한 면을 발견할 수 있죠.”

홍일점 신디는 조영구의 마음씨를 살짝 귀띔한다. 이하경도 “스스로에게는 지독할 만큼 아끼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베풀 줄 아는 친구”라면서 그의 어깨를 툭 친다. 조영구는 부끄러운지 “멤버 간의 나이 차이가 스무 살 남짓 나는 그룹이라 더 끈끈하다”며 수줍게 웃는다.

씀씀이가 헤프지 않은 여자 만나 가정 꾸리고 싶어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은 목표를 정해서 달성하다 보면 큰 목표에 도전할 용기도 생긴다고.

그는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 한때 나태해졌던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관리를 소홀히 해 많은 돈을 잃기도 했다고. 그 이후부터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잃은 돈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한두 개 은행만 거래하면서 신용을 높이고 혜택도 많이 입었다고 한다.

“저에 대한 모든 것은 6월 말에 나올 ‘시골총각 재테크’(다산북스)에서 볼 수 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방송에 입문하기까지의 과정, X파일 사건도 적혀 있고, 저축 원칙이나 살림법도 담겨 있죠(웃음).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보면서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찾아주는 곳이라면 지역 행사도 마다하지 않고 “OK”를 외친다는 조영구. 이쯤 되면 스타급 MC를 꿈꿀 법도 한데, 그는 인기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기회가 된다면 이웃들의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을 맡아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소외계층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사랑의 밥차’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봉사활동도 삶의 목표 중 하나거든요. 어려운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분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어머니도 4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오셨죠. 연세가 지긋한 지금도 양로원에 가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거동을 돕고 계세요. 봉사활동은 어머니에게 배운 선물입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일등 신랑감인데 그에게는 왜 아직 결혼 소식이 없을까.

“젊을 때는 여자친구 만나는 시간과 돈이 아까웠어요. 간혹 만나더라도 점심시간 때 잠깐씩 만나 간단한 식사만 했죠(웃음). 조금 여유가 생긴 지금은 제 나이가 너무 들었네요. 제 생활에 맞춰 씀씀이가 헤프지 않은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결혼을 목표로 잡기엔 아직 달성해야 할 목표가 너무 많은 것일까. 결혼 얘기에 잠시 말끝을 흐리던 조영구는 “그전에 ‘쓰리쓰리’가 대박나야 한다”며 멋쩍게 웃는다. “성인가요계의 코요테”라고 외치며 지방 공연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뜬 조영구. 탄탄한 인생 재테크를 설계한 그의 모습에서 꺼지지 않을 열정이 느껴진다.

   (끝)

Posted by 돌마루™
2008. 4. 23. 15:28
원문 출처 :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4240919341&code=900314

》인터넷에서 드라마와 영화 구하기


》미국 드라마로 영어공부 할 때 효과적인 방법

①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드라마를 잘 골라서 반복해서 보자.

②받아쓰기를 하며 대사를 옮겨 써 보자. 심하게 중얼거리는 말투나 여러 사람의 겹치는 소리는 무시해도 좋다.

③인터넷 동호회나 카페를 통해서 스크립트를 구하자.

④처음부터 끝까지 큰 소리로 계속 따라하자.

⑤대사 한 마디를 외우더라도 정확한 발음과 억양을 구사하며 외우자.

⑥사전을 찾아가며 표현의 쓰임새와 뉘앙스를 익히자.

⑦안 들린다고 기죽거나 포기하지 말자. 10~20%만 알아들어도 자막 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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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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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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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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